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影右/페치

[아카카게/쿠니카게] 페치

*커플링마다 페치가 다릅니다

*카게른 페치 시리즈입니다

*쿠니카게는 약간의 오이카게 요소가 있습니다






3. 아카카게: 어깨





숨을 마시고 내쉴 때마다 온몸을 채우는 따뜻한 기운이 하루의 긴장감을 해소시켜 주었다. 저녁시간의 샤워실은 조용했다.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 오롯이 혼자서만 즐길 수 있는 지금을 조금 더 느끼기 위해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일정한 리듬과 함께 찾은 안정감은 기대한 것보다 훨씬 평화로웠다. 눈을 뜨고 올려다본 샤워실의 작은 창 너머로 반짝이는 별이 잔잔하게 공간을 채워 이 평화를 더욱 실감시켰다. 나는 머리카락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수건으로 가볍게 털며 샤워실을 나왔다. 일찍 나가 봤자 좋은 건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비어버린 캐비닛을 닫고 벤치에 앉았다. 혼자만의 시간은 내게 여유를 주었고, 나는 그 여유를 최대한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정적은,



"아, 안녕하세요."



카게야마에 의해 쉽게 깨져 버렸다. 탈의실의 벽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간은 8시, 씻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아이는 몸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려운 건가. 아이의 눈동자가 이쪽을 보지 못하고 빠르게 흔들렸다. 굳게 닫힌 입술 또한 아이의 당혹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아이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나 혼자 쓰라고 있는 곳도 아니잖아."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짧은 한마디에 아이는 그제야 굳어 있던 몸을 움직였다. 아이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있지 않았다. 가까워질수록 구겨지는 미간이 아이가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히나타나 츠키시마를 대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 아이의 아이다움을 더욱 강조시키는 듯했다. 캐비닛의 거울 너머로 아이의 얼굴이 비쳤다. 거울 안의 아이는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이며 짧은 시선을 내게 던졌다. 눈치가 없는 편이네. 나는 가만히 거울 속의 아이와 혼자만의 시선을 주고받았다.



"꽤 늦게 씻네."



내 목소리가 고요한 탈의실을 가득 울렸다. 그것이 아이를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아이는 크게 몸을 움찔거렸다. 그 전체적인 큰 움직임 속에서 눈에 들어온 곳은, 다름 아닌 아이의 어깨였다. 동그란 머리를 타고 아래로 떨어지는 매끄러운 선을 이어 주는 맑은 어깨. 그것이 내 시선을 이끌었다. 아이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검은 티셔츠가 아래로 흘러내리자 그 검은색이 가리고 있던 어깨의 선이 선명하게 자신의 빛을 드러냈다. 가벼운 상처로 채워진 아이의 팔다리와 달리, 아이의 어깨는 어떠한 티도 없이 깨끗했다. 아이가 머리를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어깨의 근육이 미세하게 두근거렸다. 언제까지 깨끗할 수 있을까. 고요한 여름날의 공기가 살랑거리며 내 호기심을 아이에게 느리게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오늘 연습은 어땠어?”

“아, 아, 어제보다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아직 반밖에 되지 않아서….”

“내일은 내가 도와줄까?”



아이의 시선이 올곧게 나를 향했다. 아이는 파랗고 까만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단순했다. 하지만 투명하고 맑은 생각을 그냥 두고 있을 만큼,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아이에게 손짓했다. 미소는 가장 효과적인 다독임이라고 했던가. 출처는 알 수 없었지만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아이는 별을 끌어안은 눈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 호기심의 온상 또한 함께 가까워졌다. 내 옆에 앉은 아이에게서 은은한 여름의 향기가 났다. 푸른빛이 작게 일렁이는 향기의 끝은 역시나 아이의 어깨였다. 만져 줄래요? 가까워져 더욱 선명해진 맑은 빛깔이 내게 그렇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 속삭임에 보답하려는 듯 천천히 뻗어 나간 손이 아이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도와주는 것 정도는 가능해.”

“감사합니다!”



나는 아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가볍게, 또 조용하게 아이의 선 위에 리듬을 그려 나갔다. 그리고 그 음은 내 기대에 부흥하며 차분히 소리를 높여 갔다. 손가락 끝을 타고 아이의 부드러운 살결이 전해졌다. 나는 가볍게 아이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쓸었고 그에 만족한 입 꼬리가 매끄러운 호선을 그렸다.



“내일 연습 끝나고 바로 하는 겁니까? 토스 요령도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아이의 신경은 온통 하나에 집중되어 있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따위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나중에 더 크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아이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손가락의 투명한 흔적으로 가득한 아이의 어깨에 입술을 묻었다. 모른다면 가르쳐 줘야지. 나긋한 속삭임이 조용히 아이를 감싸 안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들뜬 어깨가 가볍게 들썩였다. 아아, 가르칠 게 많네. 말과 다르게 내 입꼬리는 옅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피곤하세요?”



오히려 피곤함을 날려 버리는 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가까이서 내 귀를 간질였다. 조금은 피곤하다고 해야겠지.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영역에 파고들었다. 더 깊게, 더 진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아이의 온전한 체향이 다시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니, 이건 더 이상 호기심이 아니었다. 선명한 붉은 빛의 욕구. 만지고 싶어. 핥고 싶어. 내 흔적을 전부 남기고 싶어. 오롯이 아이만을 향한 집념이 내 등을 떠밀며 나긋하게 나를 재촉했다. 하지만 나는 단순하지 않았다. 눈앞의 작은 만족보다 누르고 누른 욕구의 결정체가 더 달콤하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아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다시 파란 눈동자를 내 안에 가득 담았다.



“피곤하니까 얼른 씻고 들어가자.”

“아, 아직 안 씻으셨습니까?”

“잠깐 쉬고 있었어.”



그러면, 갈까? 무언의 권유였다. 아이는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며 파란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그리고 몇 초의 짧으면서도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갈증을 해소시켜 줘야지, 카게야마. 아직도 올라오는 붉은 충동을 안고서 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별이 순간 구름에 가려져 사라졌다.











4. 쿠니카게: 손목





긴장 상태인 근육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벤치에 앉아 꽉 조이고 있던 보호대를 풀었다. 연습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난 상태였다. 딱히 연습을 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체육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유는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오이카와 씨, 서브 가르쳐 주세요!”

“싫거든? 오늘 싫다고 수백 번은 말한 것 같은데?”

“아직 열 번밖에 안 했습니다.”



매일 저러는 거, 지치지도 않나. 카게야마는 오늘도 오이카와 씨를 쫓아다녔다. 입부하고 계속 저 상태.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내 쪽으로 굴러온 공을 주워 들었다. 오늘은 내가 뒷정리 담당이었다. 덧붙여 카게야마도. 하지만 카게야마는 그것을 잊은 모양인지 바닥을 구르는 공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럴 틈도 없는 것이겠지만. 일단 주변의 공을 정리하고 다시 벤치에 앉아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 씨에게 들고 있는 공을 내밀며 조르는 모습이 꼭 일곱 살 꼬마 같았다.



“아…!”



카게야마의 공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순간이었다. 공을 지탱하던 손목이 오이카와 씨에게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멍하니 두 사람의 연결점을 바라보았다. 오이카와 씨에게 한 손에 잡힌 얇은 손목. 카게야마가 저렇게 가늘었던가.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에 오이카와 씨도 놀란 모양이었다. 이내 두 사람의 연결점은 끊어졌지만 그 자리에는 약간 붉은 흔적만이 남았다. 빨간색. 파란 카게야마와 대조되는 색이 유독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오이카와 씨의 색이려나. 나는 느리게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아아, 미안. 청소해야 하는구나. 토비오 쨩, 너도 오늘 당번이잖아. 깨끗하게 하면 이 오이카와 씨가 한번 생각은 해 보도록 할게.”



오이카와 씨에 의해 카게야마의 공은 내게로 던져졌다. 동시에 카게야마의 시선 또한 옮겨졌다. 얼른 와. 나의 가벼운 눈짓에 카게야마의 얼굴 가득 실망감이 번졌다. 뭔가 짜증 나. 오이카와 씨를 볼 때와 전혀 다른 눈빛이 무언가를 천천히 수면 위로 올리는 것 같았다. 나는 한 번 더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공은 이미 내가 정리한 지 오래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카게야마는 남아 있는 네트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를 위해 팔을 높이 뻗었다. 가려지지 않은 팔을 따라 나는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오이카와 씨의 붉은 빛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저게 지워지면 무슨 색일까. 짧은 순간의 생각이 옅은 미소를 만들었다.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쿠니미, 빨리 가자.”



어느새 카게야마는 내 앞에 있었다. 카게야마는 네트망을 끌어 안은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얀 네트망 사이사이로 보이는 손목이 다시 내 시선을 이끌었다. 가려져 있으니까 더…. 나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고 카게야마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네트망을 받아 들려던 찰나, 그의 ​손목이 내 손 끝을 스쳤고, 나는 손가락 끝에서 뜨거운 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카게야마의 손목이 나를 향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게 만들고 싶어. 나는 내 손이 질릴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그리고 카게야마의 뒤를 따라 체육 창고로 향했다. 여전히 내 시선은 한 곳이었다.



“어? 전구.”



처음 켰을 때부터 불안했던 전구가 결국 빛을 잃고 완전히 꺼졌다. 어두워진 창고 안을 채우는 것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옅은 가로등 불빛뿐이었다. 어둠이 내게 준 것은, 자유였다. 나는 억눌렀던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나는 어둠을 방패로 삼아 허둥거리는 카게야마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불빛으로 점점 선명해지는 붉은 빛을, 잡았다.



“쿠니미, 왜?”



역시나 그곳은 아직도 오이카와 씨의 흔적으로 뜨거웠다. 입학한 지 이제 3개월, 더 정확하게 카게야마가 오이카와 씨를 만난 지 3개월. 카게야마의 곳곳에는 오이카와 씨의 흔적이 가득했다. 수업시간의 짧은 꿈에서도, 점심시간의 대화 속에서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 씨를 생각했다. 아마 지금은 그 사람에게 깨끗해진 체육관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이겠지. 기분이 이상했다. 머릿속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듯했다.



“야, 야, 아파. 뭐하는 거야.”



혼란은 그대로 밖으로 드러났다. 내 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게야마의 손목을 꽉 쥐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뜨거움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나는 손을 놓지 않았다. 하얗게 만들고 싶지? 내면 속의 누군가가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그 한마디가 뜨거웠던 머릿속을 차갑게 가라앉혔고, 나는 언제나의 평정심을 찾았다. 입꼬리가 다시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튀어나온 손목 뼈를 문질렀다. 그리고 카게야마에게 천천히 다가가 나즈막하게 속삭였다.



“카게야마, 여기 부었어.”



나는 7살 수준의 아이를 다루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작은 관심을 잡고 흔드는 것. 그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이것은 특히 카게야마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 나는 느린 동그라미를 그리며 낯설면서도 거부감이 들지 않게, 아주 천천히 카게야마의 여린 살결을 쓰다듬었다. 카게야마는 예상대로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나는 차분하게 부드럽고도 하얀 그림을 새겼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완성할 수 없었다. 나는 조금 더 선명한 나의 색을 카게야마에게 칠하고 싶었다. 오이카와 씨로 덧칠할 수 없는 온전한 나의 색을.



“아직도 아파?”



카게야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짧은 콧소리와 함께 그의 손목을 내 쪽으로 가까이 당겼다. 그리고 다시 부드럽게 손을 움직였다. 슬쩍 올려다본 카게야마의 표정은 절경이었다. 낯선 고양이를 보았을 때 항상 짓던 카게야마 특유의 표정. 그 낯섦은 무엇일까. 답은 내게 있었다. 나는 그 답을 조금 더 끄집어내기로 했다. 무엇이든 확실한 정답을 말해 줘야 하니까. 손목만을 간지럽히던 내 손이 카게야마의 팔 전체를 부드럽게 쓸었다. 그리고 다시 가느다란 손목을 문질렀다. 어느새 카게야마를 채운 나의 흔적이 불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였다. 이제 완전하게 누르는 일만 남았네. 나는 카게야마의 손목에 입술을 묻었다. 그리고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계속해도 돼? 고요한 물음이 어두운 창고 안을 가득 울렸다. 카게야마의 시선이 내게서 떨어졌다. 승낙의 신호. 나는 천천히 입술을 벌려 내 숨을 그에게 불어넣었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그 사람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잠깐 자리 좀 내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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